재개발에 투자하며 알게 된 사실들
전편에 이어 우리 부부의 강남 입성기를 계속해서 연재합니다. 용산구의 노후 주택을 간신히 매도해 놓고 우리 부부는 우선 숨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다시 찾은 것은 재개발 물건이었습니다. 노후 주택에 그렇게 당하고도 다시 재개발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참 자신 만만한 선택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부부가 고통의 시간 동안 정비 사업을 꽤 이해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서울의 신축 아파트가 곧 될 재개발 입주권을 매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름대로 치밀하게 생각한 뒤 관리처분인가에 이주까지 거의(!) 마친 서울의 입주권 물건을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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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은 '사업'에 투자하는 것
최근 2023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부동산 스터디 카페 지기이신 '붇옹산' 님께서 실시간 댓글 질의응답을 하셨는데요,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질문과 댓글을 읽어보다가 재개발에 대한 붇옹산님의 답변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재개발은 '사업'에 하는 투자라고요. 보통 부동산은 입지에 하는 투자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재개발은 '사업'에 하는 투자라는 말에서 붇옹산님의 깊은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저 역시 그 말이 정말 맞다고 생각합니다.
재개발은 해당 구역에 지분을 가진 수십, 많게는 수백명의 권리자들이 함께 하나의 정비 사업을 시행하는 구조입니다. 정비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장적인 여건(금리, 공사비), 입지(분양의 매력도), 권리관계(조합원의 수, 지분의 다양성 등), 정치적 관계(지자체의 입장, 조합 내부의 단합 및 역량, 기타 이해관계자) 등이 모두 고려되어야 합니다. 주식회사가 그렇듯이 '대리인 문제'(조합장 및 임원이 조합원의 임원을 대변하지 못하고 본인의 잇속을 우선적으로 챙기는 것)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며, 이때 적절한 감시와 감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업은 산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재개발은 정말로 주식회사에 투자하듯 꼼꼼하게 그 사업의 면면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대위 참여
재개발 물건을 매수하고 나서 몇 달 뒤, 핸드폰으로 문자가 날라왔습니다. 소위 말해 비대위의 문자였습니다. 재개발 구역 내 이주 완료를 막고 있는 교회 등 몇몇 건물의 명도가 조합장의 무능함으로 인해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조합장의 방조로 시공사와의 공사비 협상이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 채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이었습니다. 이후 비대위는 설명회까지 열며 상황의 해결을 재촉했으나, 정말로 이주는 개시한 지 1년이 지나도록 끝나지를 않았습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조합원들의 항의에 대응하는 조합장의 방식이었습니다. 기업에 있었다면 '임금피크'는 족히 지났을 노인이었던 조합장은 10년 여가량을 이 구역의 조합장으로 지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그전에는 화물처 기사였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답변을 회피하고 정비업체에 답변을 떠넘겼으며, 조합원들을 무시하는 언행을 일삼았습니다. 정정 당당하게 정보의 공개를 청구하여도 뱀처럼 공개를 회피했고, 그런 행동에 죄책감 또한 없었습니다. 같은 조합원인데도 불구하고 조합장은 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듯했습니다.
금방이라도 이주 후 삽을 뜰 줄 알았던 착공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데다가 돌아가는 꼴이 쉽사리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보이자, 저희 역시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젊고 승계 조합원들로 이루어져 있던 비대위의 주장이 딱히 불순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조합장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원조합원들의 대응이 미심쩍고 불합리해 보였습니다. 비대위의 자료 편집을 도와주고, 글을 다듬으면서 알게 된 것은 '가만히 있다가는 내 집이 제대로 지어질 수 없겠다'는 현실이었습니다.
조합장의 해임, 다시 선출, 다시 선거
그 후 저희 조합에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문제가 있었던 조합장은 천신만고 끝에 해임됐습니다. 해임총회 날 난생처음 보는 '어깨'들이 조합 사무실에 들이닥치고, 그 사이에서 조합원들 수십이 끼여 대치하던 과정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해임 이후 새로운 조합장이 선출되기 전까지 그나마 있던 선장이 없어진 배에 둥둥 떠있는 듯한 불안감도 느껴보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조합장 선출된 이후의 희망감, 그런데 그 희망이 다시 절망으로 바뀔 때의 허탈함(지난 조합 집행부와 비슷한 상황의 연속) 등... 서울 한복판의 재개발 사업이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위태하게 흘러갈 수도 있다는 것을 매일매일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마주했습니다.
저희가 특히 더 운이 나빴던 것 같기도 합니다. 모든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다 이렇지는 않고, 또 반대로 모든 정비사업이 다 조금씩은 갈등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어쨌든 나 스스로가 결정할 수 없이 사업의 비례율이 낮아지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정비사업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는 기대도, 미련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여유자금으로는 재개발 투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가격이면 기축 아파트를 투자할 것 같기는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제 진짜 강남 아파트를 매수한 과정을 작성해 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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