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어리버리 가족의 강남 입성기(2) - 용산의 꿈

+snowball+ 2023. 12. 2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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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버리 가족의 강남입성기 두번째

 

전편에 이어 저희 부부의 강남 입성기를 계속해서 연재하고자 합니다. 첫 글을 쓰고 남편에게 보여 주니 지난날을 회상하며 키득키득 웃음을 보이네요. 저도 지금에서야 웃으며 '무식한데 욕심만 많았다'라고 자평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돌이켜 생각하기도 싫었던 현실이었습니다. 세상과 돈은 '무지한데 욕심만 많은' 젊은이에게 얼마나 가혹한 철퇴를 내리던지, 지금 생각해도 스르르 몸서리가 쳐지는 고통이었습니다.

 

▼ 전편 보러가기

 

30대에 강남 아파트 구매한 이야기(1) - 어느 신혼부부의 실패담

30대에 강남 아파트 구매한 이야기 - (1) 어느 신혼부부의 실패담 안녕하세요. 오늘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작성하고자 합니다. 2023년은 저희 가족에게 나름 중요한 성과가 있는 해였습니다. 지난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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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투른 투자의 시작

 

패기 있게 제가 보유하고 있던 입주권을 매도했으나 여전히 그다음 투자처에 대한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다만 이미 결혼하며 사택에 입주했기 때문에 당장 머무를 집보다는 전도 유망한 곳도 함께 찾아볼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레 선택지는 굉장히 넓어졌습니다. 여전히 마포 등 CBD 근처를 고집하는 남편과, 경기도 및 동남권을 고집하는 아내의 입장이 대립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여러 신축 아파트의 보류지 지분 경매도 있어 시도해보기도 하였습니다. '흑석 롯데캐슬 에듀포레', '서울숲 리버뷰 자이' 보류지 지분을 보고 고심했던 기억이 나네요.

 

 

 

용산에 발을 들이다

 

그러나 뾰족하게 이거다 싶은 것이 없었고, 매도는 끝났으니 총알은 갈 곳은 잃은 채 대기 중이었습니다. 2018년~2019년은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무언가 매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급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친정아버지께서 용산구의 낡은 주택을 사보는 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용산구에 본인이 다가구주택을 10년 전부터 갖고 있었고, 개발이 된 것은 아니지만 월세로 인한 현금흐름 + 평가이익이 오른 탓에 성공적인 투자를 하신 경험이 있으셨습니다. 하여 저희에게도 같은 방식의 투자를 권유하신 것입니다. 

 

집은 매우 낡은 연와조+목조의 가옥이었습니다. 서울 근대사(?)와 함께 한 것 같은 비주얼이라고 하면 대충 상상이 되실까요. 다만 용산 한복판, 누가 봐도 개발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지역에 있었고 공인중개사 아주머니도 개발의 큰 그림을 보여주며 저희를 설득했습니다. 그 집을 보고 온 다음날, 저희는 저희가 가진 거액의 돈을 그 근대사 가옥을 사는 데 지불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말았습니다. 계약한 처음에는 마치 그 집이 곧 몇 년 뒤 초고층의 맨션이 될 듯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아... 거의 5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 쓰면서도 그때의 어리석음에 가슴이 약간 쓰리네요.

 

 

 

몇 년이 지나면 초호화 맨션이 될 줄 알았다

 

재개발에 '재'자도 모르는 어리석은 투자였습니다. 해당 지역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기는커녕 정비 예정구역으로 지정되었다가 조합원들의 소극적인 움직임으로 지정이 해제된 곳이었고, 그런 곳에 그렇게 거액의 쌈짓돈을 태운다는 건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 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은 여전히 그 상태입니다. 아무리 자산가라고 하더라도, 넉넉히 봐도 전체 자산의 20% 이상을 태우기에는 리스크가 있는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월세 수익도 한 달 20만 원 정도로 보잘것없어, 투자로서는 메리트가 많지 않은 물건이었습니다.

 

저희의 문제는 매수를 끝내고, 등기를 치고, 그리고 그런 상황들에 대해서 조금씩 감을 잡아갔다는 것입니다. 용산의 핵심지에 분명 지분을 매입했는데, 이게 언제 초고층 맨션이 될까? 처음에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재개발의 절차를 알게 되었고 저희의 장밋빛 전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파악하게 된 것입니다. 용산의 개발에는 구청장, 시장, 하물며 대통령까지의 정치인들의 의지도 필요했고 부동산 시장의 우호적인 여건도 필요했습니다. 또한 조합원들의 전략적인 협동과 대처도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면에서 당시 해당 지역은 낙제점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 근대사를 대변하는 낡은 주택은 우환거리였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날, 어느 집이 침수되었다, 무너졌다는 뉴스를 들으면 아파트에 사는 저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저희가 투자한 그 집이 혹시 무너지지는 않을까, 몇십만 원의 월세만 내고 간신히 살아가시는 세입자분들께서 혹시 사고라도 입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장마 기간에는 밤에 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그 낡은 집이 불이라도 날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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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지 약 1년이 되었을 때, 남편은 매도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매도를 하면 매도가 될 줄 알았으나 이미 당시에는 저희가 매수 시에 불던 약간의 용산 개발 훈풍이 다시 꺼진 상황으로, 새로운 매수인을 구하는 것도 난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실낱같던 희망이 사라지고 '큰일 났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주용 부동산의 장점은 환금성이라는데, 환금성조차 없는 투자를 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심지어 저희가 용산구의 낡은 가옥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던 그 시기, 서울에 저희가 살 수 있었던 모든 아파트들의 가격은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친정아버지가 이 투자를 권유했다는 이유로 자책감과 우울감에 빠지기 시작했고, 남편은 저보다는 의지가 있었지만 본인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늪과 같은 상황에 역시 절망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참 많이 싸우고, 밤마다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남편이 먼저 제안했던 사택 거주였지만, 본인의 직장까지 매일 1호선을 타고 1시간 30분의 거리를 출퇴근하면서 더 힘들었을 겁니다. 몸도 힘든데, 희망도 안보이니까요.

 

부동산으로 서로 이혼하는 부부들도 많다고 하는데, 그런 심정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공감이 갔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큰돈을 쥐고 치기 어리게 휘두른 칼날이, 저희를 오히려 찌르고 다치게 했습니다. 차라리 그 돈이 없었다면 이런 고통도 없었을 텐데, 그때는 정말 정말 많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아이를 출산하겠다는 생각 역시 무한정 지연되었습니다. 결혼하면 평범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기 전까지는 아이를 기를 자신이 없다'는 남편의 말이 그때 참 슬프고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도 다시 1년이 지나 저희는 다른 사람에게 이 부동산을 팔 수 있었습니다. 부유한 노부인이었습니다.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이 부동산을 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저희에게는 귀인이었습니다. 구매했던 금액보다 겨우 약 몇천만 원을 더 얹어 매도하며 원금이라도 건진 것에 안도해야 했습니다. 

 

글이 길어져서 그다음 이야기는 다음 글에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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